본문 바로가기
게임 인프라

'건프라'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by 솔로몬의 악몽 2026. 1. 7.

건프라라는 단어가 ‘사건’이었던 이유: 최초의 건프라 제작 비화

프라모델 한 번이라도 만져본 사람이라면 그냥 못 지나가는 이야기. 반다이가 어떻게 “기준점”을 만들어버렸는지.

이 얘기는요. 프라모델 한 번이라도 만져본 사람, 아니면 어릴 적 문방구에서 건담 박스 앞에서 발걸음 멈춰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가면 안 됩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부르는 ‘건프라’라는 단어, 이게 처음부터 이렇게 위대한 존재는 아니었거든요.

오늘은 “반다이가 잘 만들었네” 수준이 아니라 건프라가 왜 ‘사건’이었는지, 그리고 왜 지금까지도 프라모델의 기준점으로 남아 있는지를 풀어봅니다.


반다이는 원래 장난감 회사도 아니었다

많은 분들이 반다이를 “원래부터 장난감 잘 만들던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시작은 전혀 다릅니다.

반다이 장난감 사업부가 생긴 건 1950년 7월, 한국전쟁이 막 터진 직후였습니다. 반다이라는 사명은 万代不易(만대불역)의 앞 두 글자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던 초대 사장 야마시나의 의지가 담겨 있죠.

그리고 당시 반다이의 주력 사업은 섬유 판매였습니다. 장난감 파트는 남는 자재를 소진하기 위해 봉제인형 같은 걸 만들던 수준이었죠.

근데 여기서부터 반다이가 반다이합니다.

장난감이 탄력을 받자, 아예 장난감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만들고 업계 최초로 장난감 품질 보증 시스템까지 채택합니다.

1952년에 만든 자동차·항공기 금속 장난감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장난감 사업 확장 계기가 됩니다.


미국에서 터지고, 일본에서 버티고

당시 반다이 장난감은 압도적인 퀄리티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시장에서는 큰 재미를 못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철완 아톰 장난감을 팔면서 지명도가 서서히 오르고, 이후 울트라맨 시리즈로 초대박을 내며 블록버스터급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승승장구하다가 한 번 크게 흔들린다

1970년대까지 잘 나가던 반다이는 불필요한 사업 확장으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라이벌인 에포크·타카라와의 경쟁에서 대응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때 창립자 아들인 마코토 야마시나가 지휘봉을 넘겨받고, 전체 임원을 젊은 직원으로 교체하는 초강수를 둡니다.

마코토는 프라모델과 휴대용 오락기를 주력으로 밀면서 기존 금형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했고, 프라모델 제작 신기술을 도입하며 업계와 격차를 벌립니다.


 

그리고 등장한, 인생 파트너: 선라이즈

여기에 건담 애니메이션 제작사였던 선라이즈의 제휴사가 된 것이 신의 한수였습니다.

선라이즈가 만든 1979년 건담 애니메이션이 기록적인 시청률을 보이면서, 반다이가 만든 건담 장난감도 불티나게 팔리게 됩니다.


최초의 건프라: 1/144 RX-78, ‘장난감’의 레벨이 달라졌다

반다이가 제작한 최초의 건프라는 1/144 스케일의 RX-78 버전이었습니다. 이 제품은 엄청난 퀄리티로 반다이의 기술력을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 팔다리 관절이 매우 사실적이었다
  • 다양한 자세로 진열할 수 있었다
  • 균형 잡힌 비율과 안정성이 뛰어났다

당시 평가가 대체로 이랬습니다. “기존 장난감들과 차원이 다르다.”


완판은 기본, 압사 사고까지… 그 시절 ‘건프라 열풍’

당시 건프라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어느 완구점이나 문방구든 출시되면 즉시 완판되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치바현의 한 백화점에서는 건프라를 사려는 인파가 몰려 개점과 동시에 압사 사고가 일어났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RX-78의 초대박 이후,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로봇들이 시리즈로 발매되기 시작합니다.


접착제 시대의 아쉬움, 그리고 기술 집착의 시작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당시 기술 한계로 접착제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접착제가 필요 없는 장난감은 100~200원짜리 싸구려 장난감 정도였던 시절이기도 했죠.

건프라 개발 담당자 카노 요시히로는 반다이 건담 시리즈가 고퀄로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반다이 R&D 부서는 1970년대 중반 등장한 CAD와 컴퓨터 그래픽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당시로선 무모하다는 말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훌륭한 선택이었다. 그 덕에 기술력이 진화했고 1987년 역습의 샤아 시리즈에 이르러 접착제가 필요 없는 스냅 핏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컴퓨터 그래픽 수준이 발전한 만큼, 반다이의 기술력도 비례해서 발전했다고 보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선 ‘건담’이 아니라 ‘칸담’이었다

특이하게도 한국에서는 1980년에 ‘칸담’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됩니다. 이유는 저작권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너무 인기가 많아 수요를 맞추지 못하자 반다이가 한국 아카데미사에 하청을 줬고, 일부만 일본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판매했다는 겁니다.

그 덕에 당시 한국 아이들은 반다이와 동일한 퀄리티의 건담을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 일본 판매가: 300엔
  • 한국 판매가: 300원

당시 동네에서 장난감 좀 만든다는 아이들 사이에선 칸담 모르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레이트 마징가 등 기존 로봇 장난감과는 차원이 다른 고퀄에 매료됐던 거죠.

재밌는 포인트는 이겁니다. 영자로는 건담이라고 적혀 있는데, 한글로는 칸담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 애니메이션을 본 적 없는 아이들이 칸담 장난감을 갖고 놀던 시절입니다.


박스 열자마자 느껴지던 ‘다름’

건담은 박스를 개봉했을 때 런너부터 달랐습니다. 부속 하나하나가 작고 정밀했죠.

조립 설명서 또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것 같은 정밀함을 보여줬습니다.

지금 보면 보잘 것 없는 가동 범위에 촌티가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당시로선 정말 대단했던 겁니다.


왜 반다이는 아직도 독보적인가

반다이가 이런 수준의 고퀄 장난감을 만들 수 있었던 건 “10년 뒤의 기술을 미리 가져와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기술력이 배경에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후발 업체들과 최소 10년 이상의 기술 격차를 보이는데,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프라모델 R&D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도 그 이상의 수익을 뽑아낼 수 있는 회사가 반다이뿐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유맛 한 줄 정리

건프라는 잘 만든 장난감이 아닙니다.

프라모델의 기준을 처음으로 만들어버린 ‘사건’이에요. 그래서 지금도 “건프라 수준”이라는 말이 통하는 거죠.

다음에 프라 하나 조립하면서 런너 잘려 나가는 소리 들리면, 이 생각 한 번 해보세요.

“이거… 처음 만든 사람들이 진짜 미쳤구나.”

이렇게 알고 만들면 프라가 더 맛있어집니다.

※ 본 글은 제공된 원문 내용을 바탕으로, 문체만 블로그 스타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